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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단독]타자 치던 검찰 말단 여직원,사시 관문 뚫었다

유아재 2008. 11. 26. 14:59

정영미 씨 퇴직후 ‘주경야독’… 7년만에 2차 합격

 

“15년전 검사님과 법조인 되겠다던 약속 지켰죠”

“검사님처럼 훌륭한 법조인이 돼 돌아올게요.”

 

1993년 검찰 말단 여직원이 한 초임 검사에게 한 약속을 15년 만에 지켜 화제다.

주인공은 올해 사법시험 3차 면접을 마치고 25일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정영미(35·여) 씨.

정 씨는 1989년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인문계 고교를 포기하고 서울 강북구 신경여상을 1등으로 입학했다.

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그는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,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어머니를 외면할 수 없어 대학을 포기하고 10급 검찰 공무원 시험을 봤다.

 

1993년 서울지검 형사2부에 배치된 그는 자신의 꿈을 바꿔 놓은 한 검사를 만났다. 그해 초임 검사로 부임한 양부남(현재 광주지검 부장검사) 검사. 당시 양 검사는 한 달에 300건이 넘는 사건을 맡아 야근을 밥 먹듯 반복했다. 정 씨는 공소장을 일일이 타자기로 옮기는 일을 했다. 그러던 어느 날 교통사고 한 건이 경찰로부터 넘어 왔다. 양 검사는 기록을 살피더니 “뭔가 냄새가 난다”며 경찰을 불러들였다. 조사 결과 경찰이 뇌물을 받고 피해자와 피의자의 기록을 바꿔 꾸민 것. 양 검사는 전모를 밝혀냈고 그 경찰은 징계를 받았다.

 

“양 검사님은 매일 야근하면서도 사소한 사건 하나도 자기 일처럼 꼼꼼히 살폈어요. 어느 날은 폭력 사건으로 고아인 소년범이 조사를 받았는데 삼촌처럼 따뜻하게 대해주며 최대한 선처를 해주더라고요. 검사의 재량으로 한 소년을 살린 거죠.”

 

이때부터 법조인의 꿈을 꾸게 된 정 씨는 2년 동안 일한 검찰을 떠났다.

생활은 여전히 녹록지 않았다. 낮에는 음식점에서 일했고 저녁에는 대학입시 학원을 다녔다. 2년 뒤인 1996년 숭실대에 입학했지만 아버지 병세가 악화돼 보험회사 상담원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.

그래도 꿈은 포기할 수 없었다. 2001년 독한 마음을 먹고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갔다. 흔한 학원조차 갈 여유가 없어 강의 테이프를 들으며 주경야독한 지 7년. 올해 드디어 2차 사법시험에 붙었다.

월급 타면 어머니 치아를 가장 먼저 해주고 싶다는 그는 2차 합격 후 가장 먼저 양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.

“검사님이 아직도 제 이름을 기억하면서 기뻐해 주시더라고요. 올해 합격이 안 되면 내년에 또 할 생각이었습니다. 꿈과 기회는 누구에게나 동등하니까요.”

 

출처 : 동아일보(http://www.donga.com/fbin/output?n=200811250148)

이종식 기자 bell@donga.com